왜 여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
💬 와 엄청난 클릭베이트 제목. 동명의 칼럼을 뉴욕타임즈에 싣고 화제가 되어 책까지 나온 듯하다. 20세기 철의장막 저편에서 실패한 사회주의의 역사와 잔재에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어떻게 노동과 리더십과 참정권 등등... 결국은 전반적인 삶의 만족(당연히 섹스를 포함함)에 기여했는지를 다룬다. 작가는 교수고 교수로서의 모든 커리어가 이쪽(구소련/동유럽권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붕괴가 미친 영향) 연구에 집중된 사람이라, 당연히 이 책에는 수많은 논문들과 데이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걸 가장 쉽게 전달한 것은 어떤 통계가 아니라 2장인가 3장쯤 초반에 등장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다.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지만 작가와 달라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친구네 집에 몇 년 뒤에 놀러갔던 이야기이다. 작가는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에 우연히 친구가 남편과 싸우는 것을 몰래 목격한다. 남편은 네가 옷 사는 데 너무 돈을 많이 쓴다고 불평하며 카드를 주지 않겠다고 하고, 친구는 애들 걸 사는 거라고 항변하며 싸운다. 이후 술을 한 잔 하면서 친구는 남편과 싸웠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빌은 우리가 섹스를 충분히 안 한다고 생각해." '그건 내가 들었다고 생각한 싸움이 아니었다.' 작가는 친구를 배려해 자신이 계산서를 집어들고, 친구는 민망해하며 오늘 남편과 섹스해주고 내일 갚겠다고 대답한다. 이야기 끝.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 국가사회주의 정부들은 대개 여성과 남성을 사회주의 국가사업의 동등한 수혜자로 만듦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줄였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적인 고려에서 사랑과 친밀감을 분리해낼 수 있도록 도왔다. 여성이 자신의 수입원을 가지고 있고 국가가 노령기, 질환, 장애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약속한다면 여성은 폭력적이고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관계 또는 그 외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머물 경제적인 이유가 없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동독과 같은 국가에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개인적 관계가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문화를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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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사회에서 산업주의는 정식 고용의 공적 영역에 남성을 집중시켰고,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무급 노동을 책임지도록 만들었다. 이론상 남성의 임금은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여성의 가정 내 무급 노동은 고용주의 이익을 보조했는데, 노동자 가정이 미래의 노동인구를 재생산하는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여성은 임신 조절, 교육 기회 또는 의미 있는 고용 기회 없이 가족이라는 한계 안에 영원히 갇혀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자신이 남성보다 더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1928년에 버나드 쇼는 썼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남성을 노예로 만들었던 것처럼 남성을 통해 여성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여성을 그 남성의 노예로 만들었고, 여성은 노예 중에서도 최악인 노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 여성의 리더십은 중요하지만 기업과 정치에서 할당제가 소수의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 특히 유색인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긴급한 문제들을 배제하고 여성이 권력직으로 승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이방카 트럼프 식의 기업 페미니즘이라는 위험한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유리 천장은 깨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높은 서열과는 매우 동떨어진 자들의 긴급한 문제를 무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여성이 정상에 오르는 것을 돕는 정책들은 언제나 바닥에서 분투하고 있는 여성을 돕는 실질적인 조치들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정책들은 그저 기존의 불평등을 악화시킬 뿐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성 노동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고, 성 노동이 합법화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노동조합이 결성되어야 한다고, 이 경제 부문에서 일을 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성 노동은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고 국가사회주의 국가들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어왔으며 틀림없이 미래에도 줄곧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공연한 성 노동도, 교묘한 형태로 상품화된 섹슈얼리티의 판매도 여성을 위한 물질적 보장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 경제체제가 야기한 것이며, 이 체제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가진 모든 것(그들의 노동, 평판, 감정, 체액과 난자 등)을 수요와 공급의 급변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도록 부추긴다. 이런 형태의 애욕의 교환은 여성의 성 긍정주의적 역량 강화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이 거의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이다.
🔖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날 수 있고 정말로 일어나며, 무작위의 역사적 돌발 사건이 언제나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역사를 만드는 것은 집단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 퇴보는 진보만큼 자주 일어나고, 아마 그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 현상 유지에 매달리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한곳에 머물면 우리를 퇴보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성공하게 된다. 오직 앞으로 향하는 강한 추진력만이 과거의 사회 관습으로 회귀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끌어당기는 힘에 대항할 수 있다.